아는 여자 (2004), 장진
어설픔. 뭐든 어설픈 사람이 있다. 뭘하든 무엇을 생각하든 어설픈 사람.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람이 보통 다른 뜻을 품고 있다거나 누구를 속여먹을 수 있다고 잘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그 어설픈 행동들에서 우리는 진솔함을 느낄 때가 있다. 뭐 나는 뭐든 어설픈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게 진실된 사람은 아니지만서도. 여하튼.
죽음이 코 앞에 이미 다가와있는 시한부 인생이라면, 나는 인생을 얼마나 다르게 바라볼까. 죽음의 때를 아는 것은 내 삶의 시선을 얼마나 변화시킬까?
이 영화 전반에는 어설픔이 묻어나 있다. 단촐하고 단순하며 즉흥적인,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생소하고 낯선 장면들로 연출되어 있다. 화면은 시종일관 흔들리고 있으며, 이야기의 전개들과 인물들의 대화는 어색하다. 주인공의 모든 행동들,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들의 행동들, 어수선한 카메라워크,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많은 상황들, 그리고 자신의 첫사랑에게 다가가는 여주인공의 행동들까지도. 우리는 이 어설픔 속에서 진지한 시선들을 잠시 내려놓고 미소와 실소 속에서 영화를 지켜보게 된다.
나 처음인게 많아요. 그래서 잘 모르는게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궁금하게 쳐다보게된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걸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어설픈 누군가의 행동처럼 별 다른 뜻을 숨겨놓지도 않고, 그렇다고 누군가를 속여먹을 정도의 반전도 두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자가 표현하고자 했던.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행동하는 우리의 어설픈 궁금증에 대하여 진솔하게 답해주는 듯 하다. 그것이 뭐 그렇게 심오한 것이냐고. 사랑이 표현하기 힘든 깊은 감정은 맞지만, 결코 그렇게 깊은 고민으로 해결하려 들 수 있을 만큼 논리적이고 정교한 감정은 아니라는 것을 어설픈 장면들에 적당히 포개어 우리에게 스며들게 하였다.
나란 사람이 있었는 줄도 몰랐잖아요? 내가 누군지, 나란 사람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내가 언제부터 얼마나 가까이에서 아저씨를 느끼고 있었는지 몰랐잖아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싫어하는지도요.
여기서 서른아홉 발자국만 가면 우리집이에요. 처음엔 예순발자국도 넘었는데, 이제 서른아홉 발자국만 가면 돼요.
사실 어설픈 모습들은 감추고 싶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다 잘 보이고 싶고 다 잘해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늘 어설픈 모습들을 보여주고서는 불안해 하기도 한다. 내 이런 모습들에 실망하여 멀어지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생각에. 영화는 구태여 이런 어설픈 모습들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코믹하고 어설픈 그 모든 것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저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오히려 당당함이 느껴질 정도로 확신에 찬 장면들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헛웃음이 나오고 병맛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밉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그 속의 진심을 알고 있기에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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