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 (2017)

영화 2017. 7. 22. 01:00







덩케르크 (2017), 크리스토퍼 놀란





사실 이 영화가 그 자체로 '재미'를 창출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영화를 잘 이해하고 평가하는 이들에게만 좋은 가치를 가지냐는 질문에 나는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를 자주 보지 않거니와 잘 알지 못하는 나 조차도 이 영화의 자신감에 압도되었다.


영상의 대부분이 대사가 아닌 배경음악과 여러 사운드로 뒤덮여있다. 전쟁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내 영상을 채우는 적군은 독일군의 폭격기 두어대를 제외하고는 없다. 언제든지 엄습할 수 있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적군은 영화 내내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연합군들도 영화 전반에 걸쳐 발포하는 모습이 손에 꼽는다. 전쟁 영화이지만 오직 덩케르크 사건만을 담기 위해, 억지로 전투를 만들기보다는 온전히 사건만을 담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영화의 처음부터 시작되는 세 이야기는 모두 하나로 만난다. 그리고 만났다가 각기 다른 결말로 끝을 맺는다.


아무 말 없이.


세 이야기들의 연출과 배치는 영화 자체의 몰입도 그리고 전개의 완성도보다도 오히려 철저히 덩케르크 사건을 영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어 진다. 세 이야기로 영화를 멋지게 만들어야지. 가 아닌 이 영화를 위해서는 세 이야기가 필요하다. 는 식이다. 이러한 자신감이 오히려 압도적인 영상의 무게로 소비자들에게는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생존을 통해 감독이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지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마지막은 한 생존병이 신문을 받아들어 자신들의 생존에 무기력함과 자괴감을 도리어 승리보다 값진 그 어떤 것으로 감동하며 끝맺는다. 전쟁에서 큰 힘들의 부딪힘과 그 속에서의 승리와 패배보다도 무력한 죽음의 공포 앞에서의 생존 그 자체의 소중함과 절박함을 전하려고 하였던걸까. 

사실 이 영화의 매우 사실적이고 일차원적인 '기술'의 목적은 아무 의도가 없이 오직 덩케르크 사건의 영상화에만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초에 제작자의 '의도'가 없는 기술만으로도 의미를 느낄수 있다면, 그 영화는 새로 소비자를 통해 재창조된다. 이 재창조가 결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이 영화의 고유한 가치가 아닐까 싶다. 굳이 담아내지 않아도 오히려 소비자가 담고 싶어하는 그러한 의미들.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영상에 의미를 집어넣더라도 절대로 흉내낼 수 없는 제작자들의 압도적인 자심감.



한 사건의 영상화 그 자체로의 무게. 참으로 놀랍고 무서운 제작자들의 능력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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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이긴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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