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1942), 알베르 카뮈
인간(人間)이라는 단어 자체가 내포하고 있듯이 예부터 인간은 홀로 존재하기 보다는 서로간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지한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이 들어왔을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없이 온전히 나 자신을 정의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에게 감정적인 유대를 호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알베르 카뮈는 모두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이야기한다.
이 짧은 분량의 소설으로 알베르 카뮈의 창작 센스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내세운 뫼르소라는 인물과 책의 전반적인 문체와 분위기 그리고 그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은 기가막힌 제목 L'etranger까지. 알베르 카뮈의 실존주의적인 사상과 당시 격변의 세태 또한 책의 이해를 도와준다. 지금의 현대사회에 와서야 카뮈의 '이방인'이 더욱 더 와닿는 것을 본다면 그의 통찰력에도 감탄을 하게 된다.
소설 자체는 매우 짧고 간단하다. 민음사 본을 읽는 사람들은 더 그렇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사실 소설 뒤에 꽤 긴 분량의 작품 해설과 카뮈의 후기를 담은 편지 등이 실려있기 때문에 책의 두께로 소설의 진행 정도를 예상하는 이에게는 갑작스런 결말에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이른바 '감정 낭비' 이것이 내가 살아옴에 있어 늘 이해하지 못하고 하기 싫어하는 것 중 하나이다. 굳이 나의 감정 표출이 일들의 인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그러한 감정은 오히려 나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기 때문에 굳이 표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도리어 내가 그러한 일에 대해 화가 나야할, 슬퍼야할 이유 조차 모르는 나의 둔함은 오히려 나 스스로에의 귀중한 축복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 책을 읽으며 뫼르소의 매력에 이끌렸던 것도 이러한 일종의 공감에서 였지 않았나 싶다.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사실 이건 엄마의 생각이었는데 엄마는 늘 말하기를, 사람은 무엇에나 결국은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방인 中, 알베르 카뮈
학생 때에는 그런 종류의 야심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때, 그러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는 것을 나는 곧 깨달았던 것이다.
-이방인 中, 알베르 카뮈
뫼르소라는 인물은 철저히 정서적으로 strange한 인물이다. 그의 속내는 누구의 공감도 바라지 않은 채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그의 삶의 방식에 적잖은 공감을 느끼면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책의 주인공이 나와 비슷하다면 그것만으로도 책의 매력은 배가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뫼르소는 오히려 그러한 감정적인 백지 상태때문에 다른 인물들과의 몇몇 관계에서 매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 매력에 끌린 주변인물들을 주의해서 보는 것과 동시에 그것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뫼르소의 속내를 읽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 요소였다. 그러면서도 세세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은 재치있는 표현들도 좋았다. 사실 난 이 소설을 꽤나 웃으면서 읽었다.
카뮈가 밝혔듯이 그의 계획된 시리즈 중 이 소설의 테마는 '부정'이라고 한다. 이 소설의 독특한 매력에 갖혀 그의 본의를 제대로 느끼지는 못하였다고 생각되지만. 그는 인간이 다른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또 그 행동을 판단하려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지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어떤 면에서는 서로의 이방인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누구나 남들이 이해 못할 '태양' 하나를 가지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고 결백하지 못한 뫼르소에 대한 동정이 생기지는 않았다. 실제는 그가 방아쇠를 쏘았다는 것이고 불쌍한 아랍인은 그 총격에 죽었으니...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2부의 감옥에서의 뫼르소의 심경 묘사와 자아내는 분위기는 가히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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