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처음이라 (2017)
시청각 자극으로 인한 일시적 과몰입 상태 #2 (20180925~20180928)
내가 그리 유별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극진히 평범하며 평범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일시적 과몰입의 결과물인 이 감상마저도 나만의 생각이나 고민이 아닌 누구나 하는 생각이나 고민이겠거니 라는 생각에서 이 감상을 시작하고 싶다. 누구나 그런거겠지.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다. 때론 가족이 세상에서 가장 먼 사람들일 때도 있다. 꿈을 먹고 살겠다고 결정했을 때 이제부터 내 인생은 깜깜한 터널을 혼자 걷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깜깜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외로울 줄은 몰랐다.
외롭다는 생각조차 안하고 살았던거 같네요. 타인을 견디고 부딪히는 거 보다는 혼자인 게 낫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았으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고만 있는 것 같을 때. 아니 오히려 터널 끝이 보이는 것이 무서워질 때. 그저 이렇게 깜깜한 터널속을 하염없이, 아무 생각없이, 아무런 희망을 가져도 되지 않은 채로 걷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을때. 내가 가는 방향이 정해지는 것이 무서워 그냥 생각없이 걷고만 있으면서 그저 평온함을 느낄 때. 지금 내가 걷고 있는 터널과 주인공의 터널의 느낌은 달랐다. 나의 터널은 어둠고 캄캄하고 힘든 공간이 아니라, 보잘 것없고 모나고 퀴퀴하지만 그저 그대로 아늑한 그런 공간인데.
그렇기 때문에 그저 혼자서도 괜찮다는 확신 하나만 있으면 되었다. 이 터널에서 누군가 곁에 없어도 행복하니까. 하지만 왜 세상은 이 확신을 비정상적으로 바라볼까. 다들 이번 생은 처음이라 모를텐데 말이다.
유대와 낭만이라는 평범함도, 비용과 에너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잠시 착각했다. 당신의 그 말에 나도 평범함을 가진 줄 알았고, 나에게도 '우리'가 생긴 줄 알고 잠시 기뻤다.
아니면 외로움에 대하여 내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나에게 지금 정말로 사랑스럽고 나무나 고맙고 과분한 친구들이, 가족들이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혼자서도 괜찮다는 확신을 가진 것이 아니라 너무나 고맙게도, 하지만 이기적이게도 내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누군가 계속 내 주변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친구와 가족이 다 없는 상태로 남겨진다면, 난 외로워질까.
까만 코트. 남들이랑 섞여있어도 튀지 않고 똑같은 사람. 남들 하는 거 똑같이 하면서 같이 얘기하고 같이 우는거 그게 내 꿈이야.
우리는 언제부터 남들과 다른 색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한 걸까. 하지만 무엇보다 씁슬한 건 나 역시 결혼이라는 까만 코트를 입었다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는 걸.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좋았다. 무언가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생각해보면 나는 한번도 내 인생에 공격수였던 적이 없었다. 언제나 적당히 수비하고 적시에 물러섰다. 공이 오면 받아칠 용기도 그렇다고 피할 깜냥도 없는 어중이 떠중이 수비수.
그냥 제 인생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이대로 하루하루가 똑같았으면 좋겠습니다. 출근해서 대출금갚고 퇴근해서 맥주를 마시고 축구를 보며 잠드는 것. 그렇게 살다가 제 집에서 죽는게 목표니까, 꿈이겠네요. 그게.
행복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냥 이대로가 행복하다. 아무 일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 그저 아무 헤프닝도 없이 무미건조히 하루가 무사히 끝나고 잠자리에 들어 하루를 끝마치는 것. 그 어떤 감정의 동요없이 무심히 기계처럼, 로보트처럼 사는 것. 그러면서 사람들 앞에서는 멀쩡히 웃으며 공감하는 척 연기해보이는 것. 이것이 아직은 짧은 내 인생 전반의 유일한 꿈이자 목표이고 행복이다. 그렇기에 사실 미래를 생각해본 적이 많지 않다. 그것까지 생각하는게 의미가 없었고 그것을 기대하는게 내 행복을, 내 자족을 무너뜨릴 수도 있으니까. 그렇기에 삶에 대한 집착이나 기대보다는 그냥 현재를 어떻게든 이무 일 없이 맘 편하게 보내는 것에 집중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나와 같은 꿈을 가지고 있는 가상의 인물인 주인공을 보며 기쁨을 느꼈고, 안도감을 느꼈다. 누구나 그렇게 사는 것이구나 라고. 하지만 좋았던 만큼 배신감도 있었다. 중반부 이후 주인공의 삶의 추구방식이 상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서 내 삶이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나는 상처를 받아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닌데, 왜 아물지도 않은 상처로 인해 피폐해져버린 삶과 내 삶이 동등히 해석되어야하는 것인지 말이다. 나만 이런게 아니구나 라는 '평범'이라는 범주 속에 있다는 안도감을 도로 뺏어가 버렸다. 나에게는 아물지 않은 상처 따위 애초에 없었는데.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내 마음은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내가 하는 말에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우리는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이런 인간의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란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사랑, 연애, 결혼. 어느 드라마에나 존재하는 이 세가지를 빼고도 재미있게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세상의 '평범'이라는 시선에 맞서 아주 영리하게 대처하는 등장인물들의 삶에 흥미를 느껴 재미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들은 다시 세상의 '평범'으로 완전히 돌아가며 드라마는 끝을 맺는다. 다시 평범으로 돌아온 이들의 사랑, 연애, 결혼 이야기에는 사실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감정들을 배우들의 연기를 통하여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 있어 좋았고, 특히 누구나 마음 속에 품고 있을 응어리들을 하나하나 긁어 만져주는 빼어난 나레이션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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