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존재 (2009)

도서 2018. 12. 1. 10:29









보통의 존재 (2009), 이석원










버티는 인생만 살다 보면, 자신이 뭐가 하고 싶어 이곳에 있는지 점점 알 수 없어진다. 아무튼 살아 보자고,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때론 이렇게 사는 것은 느린 자살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녀에 대하여 中, 요시모토 바나나


내가 내 인생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도, 그저 줄이고 숨고 하는 것도, 겁쟁이에 못난 나인 것을 들키기 싫은 옹졸한 허세인 줄 나는 안다. 껍질 뿐인 장식품으로 나를 감쌀 뿐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음 됐어'라고 별 수 없다는 듯 체념한다. 애초에 내 주제를 파악한 나에 대한 기대따위, 목표따위 없어져 버렸고, 끊임없는 자신을 향한 타자화와 객관화를 통해 나를 알아가는 중이었다. 이건 스스로를 향한 잔인한 일이었을까. 아니면 누구나 이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그러나 당신에게는 당신이 하루에 문자가 한 통도 안오는 외톨이임을 세상에 밝히지 않을 권리가 있고, 남들에겐 절대로 알릴 수 없는 치졸하고 계산적인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를 가질 자유가 허용되며, 어떤 상황에서든 수세에 몰려 있다는 것을 굳이 밖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결코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이 당신만의 사생활이기 때문에.



반면 이 글들에서 내가 매력을 느낀 것은. 작가는 솔직하게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서이다. 자신을 포장하고 감출려는 허세 없이, 그 껍질없이 담백하게 자신을 내보이고 살아가는 것 같아서이다. 나는 내가 쓰는 단 몇 자의 글들에서도, 아주 사소한 내 행동들 속에도, 나에 대한 방어와 자기변호와 자기합리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허세와 방어기제를 제거하고 싶어도 잘 없어지지 않더라. 그래서 작가가 멋있었다. 충분히 안쓰럽고 불행해보일 수도 있는 상황들에 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가가 존경스러웠다.



분명 나의 생에 무언가 엄청난 결핍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구멍이 무엇인지,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아니 채우고 싶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생의 유한함을 절실히 목도한 후 비로소 삶에 생명력과 애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일생토록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다가 그제서야 하고 싶은게 생겨나더군요.



아무런 일들이나 변화가 없었으면 했던, 그냥 이대로가 좋다고 생각했었던, 그저 내일에 대한 기대와 간절함보다는 밋밋한 오늘 하루에 만족해갔던 내 삶에 대해 변해가고 싶었던걸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조급해하지 않으며, 또한 나를 잃지도 않으면서 변해가고 싶었다. 나는 하나씩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이 책에서. 물론 이 책의 모든 글들이, 모든 사견들이 맞다는 생각을 하는 건 지양해야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공감하고 위로를 받은 것에 대해서 부정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나도 '보통의 존재'로 남아 따라갈 수 있을까라는 희망을 주고있다는 사실이 작은 위로가 되었을 뿐이다.


작가가 경험한 많은 감정들에 나는 궁금증과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느낀 많은 감정들에 대한 보통의 존재로서의 개인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밝힌다. 그럼에도, 우리가 작가의 이런 고집이 불편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옳다고 강요하지도 않을뿐더러 작가는 자신의 사견에 누군가의 공감을 끌여드릴 의도를 내비치지도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누군가의 진심의 위로로 인해서가 아니라, 그저 누군가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렇게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냥 있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그리고 그냥 그렇게 있어만 달라고,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작가는 이러한 경험들을 이 책을 비롯하여 나에게 선물하여 주었고, 비어있는 내 삶의 곳곳을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칠해나가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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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이긴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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