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2018)

영화 2018. 3. 17. 22:04





리틀 포레스트 (2018), 임순례




꿈이 고파 올라갔던 도시에서 배가 고파 다시 내려온 작은 숲. 누군가는 도피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주인공은 돌아온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주인공만큼 힘들지도 않았고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은 못난 나에게 큰 힘이, 버팀목이 되었지 열등이나 짐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내가 이기적으로 살았나 생각도 든다. 그렇다 하더라도 홀로 내던져진 서울 그 곳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나이를 먹으면서 그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샌님인, 나에게는 그렇게도 어렵고 혹독하게 느껴졌었나보다. 부족할 것 없는 부모님의 지원 속에서도 그렇게 느껴 지긋지긋한 그 곳을 이제 떠나왔는데, 영화의 주인공은 오죽했을까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 도시락을 씹었다 다시 뱉는, 냉장고는 무심함에 젖어있는 그런 장면을 볼 때면, 나 또한 저랬으리라 엄살 아닌 엄살과 같은 공감을 하였다.


그는 언제나 내가 자신을 '만나주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 말은 나를 당황하게 했고, 그를 조금 경멸하게 했으며, 무엇보다도 그에 대한 편안함을 느끼게 해줬다. 그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구를 만났더라도 그렇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했고, 겸손을 넘어서 가혹할 정도로 자신에게 인색했다.

-「쇼코의 미소」 한지와 영주 中, 최은영


이 곳에는 그녀가 그토록 바랬던 것들은 없었지만, 그토록 잊지 못하였던 것들이 있었다. 잊지 못한 채 햇살로 남았던, 혹은 응어리로 남었던 그런 것들이 있었다. 가족, 친구, 그리고 그녀를 감싸는 자연들. 그녀는 그 모든 것에 맞서 단단한 땅에서 양분을 받아 그 땅에 뿌리를 내린다. 하나 둘 씩 이겨나간다. 하지만 떠나온 그 곳도 자꾸만 주인공을 붙잡았으리라. 그녀는 자신이 억지로 붙잡았던 그 모든 것들을 하나 둘 씩 털어버린다. 털어버린다는 표현보다는 억지로 억지로 하나 둘 힘겹게 떼어낸다는 말이 맞게 느껴질 정도로 천천히 인정한다.


누구에게나 돌아갈 '작은 숲'이 있을까. 나는 돌아왔지만 여긴 이제 내 숲이 아니라는 걸 느끼곤 한다. 누군가에게는 어딘가 My Only Home 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도대체 어디가 내 집이고 어디가 내 집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공허함 속에서 주인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대단하고 멋져보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하고 아름다운 장면들 속에 꿋꿋히 살아가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신만의 '작은 숲'에 돌아와 뿌리내린 그 작은 나무가 부러웠다.


이 나무가 홀로 아름답게 사계절을 꿋꿋히 보내는 장면들은 어느 누구에게는 힐링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 또한 공감과 동경 속에서 주인공을 바라보았고 마음을 어느정도 치유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잔잔한 아름다움 속에서 제작자는 관객들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담아내지 않은 담담한 목소리로 만져준다. 누군가에겐 현실 없는 미화이고 재미없는 따분함일지는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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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이긴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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