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왕 랄프 (2012)

영화 2018. 10. 20. 11:41






주먹왕 랄프 (2012), 리치 무어







디즈니의 참신함은 대게 의인화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의인화된 대상들에 관객들이 빠져드는 이유는 이들이 구현해낸 사랑스러운 세계에 있다. 영화 주먹왕 랄프에서는 실제 코드로 설계되고 출력되어 우리가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게임 케릭터들을 의인화하였고, 이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상상하여 표현하였다. 실제로 이들이 만약 살아있는 존재라면, 이들이 감정을 가진 존재라면 어떨까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시각화하여 보여주었다.


프로그래밍된 코드는 주어진 입력에 대해 자동적으로 출력되는 존재이다. 영화에서 이들은 폐쇠적이긴해도 그 안에서 능동성과 주체성을 지니는 존재로 표현되어 있다. 자신의 위치에 대한 순수한 사명을 갖고 자신들을 찾아준 어린 고객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따분하고 반복되는 일임에도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위치에서 순수한 사명을 가지고 그 일들을 감당하는 삶은 숭고한 삶인가에 대해서 확신은 없다. 사명보다는 내 생활이 더 중요했고, 연약한 나를 지키기 위해 내 생활에만 몰입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직업에 대한 몰입없이는 이 일을 지속할 수 없겠다는 걱정도 나를 옭아맬 것이며, 그렇게 생각하면 사명에 대한 몰입이 조금 이기적인 이유이기는 해도 숭고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실제로는 주어진 입력에 대해 짜여진 결과를 출력해야하는 케릭터들도, 자기가 맡은 자리에서 자기의 일을 책임지고 수행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말이다.



"어떨 땐 나도 정말 좋은 사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어."

"넌 악당이지만 그렇다고 니가 진짜 나쁘다는 뜻은 아니야"



게임 속 악역들은 저마다의 고충이 있었다. 그렇게 몇 십년을 살아온 랄프도 이제는 지쳐 반복된 삶에서 떠나버린다. 인정받고 싶어서, 그리고 자기가 하는 일들이 모두 쓸모없고 부질없는 일은 아니라고.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랄프로 살아간다. 때때로 내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내 존재에 대해 알아봐달라고, 나 여기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라고 외쳐보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다 버리고 숨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궁색해 보일까봐, 그리고 내 존재의 보잘것 없음을 도리어 확인하는 일이 될까봐, 그리고 나 혼자 엄살피우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다시 내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나가는 것을 모두가 알아주는 것은 아니지만, 감사하게도 주변의 소중한 이들이 이 사실을 알아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정말로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망각은 때론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할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한번씩 스스로 상기시키며 살고 싶다. 내가 어찌됐든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 정말로 보잘 것 없는 사실인 것도 맞겠지만, 이따금 내가 타인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에는 보잘 것 없는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소중한 사람일 수 있을까 라는 희망을 가져보기도 한다.


랄프도 이제 바넬로피가 소중했다. 오직 부수기만 할 줄 알았던 랄프의 손은 희망이 되었고 그 희망으로 바넬로피의 삶은 바뀌었다. 외톨이에 에러인 바넬로피는 이제 외톨이도, 에러도 아니었다. 세상에서 혼자인 것같고 그리고 그닥 쓸모없는 에러라고 생각되는 나도, 어딘가에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에 대해 이 영화는 해맑게 위로해주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감사한 것 밖에 없는데 왜 자조에 파묻혀 이 감사함을 주변에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지 반성했다.


랄프가 메달을 땄기 때문에 사람들이 랄프를 사랑해주고 인정해준 것이 아니라, 랄프라는 존재 자체로 사람들은 랄프를 사랑하고 소중함을 깨닫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제작자들이 표현한 세계의 참신함이 좋았고, 그것보다도 더, 악역으로 치부받던, 그리고 외톨이로, 에러로 치부받던,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일 수도 있는 이들에 대한 응원에 위로받았고 감동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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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이긴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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