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 탈출 (1994)

영화 2015. 7. 20. 20:39





쇼생크 탈출 (1994), 프랭크 다라본트


종신형 죄수들의 심리와 생활을 그린 영화.


법에 대한 판결이 오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무고하게 죄인으로 지목되어 감옥에 갇힌다는 것은서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뉘우칠 무의미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해보았을 때 앤디 듀프레인에게 깊은 연민과 동정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흉악범들이 가득한 쇼생크의 더러움과 추악함 그리고 그 안의 개개인들의 난폭함이 영화의 곳곳에 잘 나타나있다. 주인공이 당하는 폭력과 성폭력, 간수들의 필요 이상의 폭력과 언행, 소장의 부패와 언행의 불일치 등.


다만 선악 구도를 '간수와 죄수', '소장과 죄수' 로 잡은 것 같아 이러한 구도에 대한 몰입과 공감은 일어나지 않았다. 간수는 물론 흉악한 죄수들을 강력히 제압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일반인들보다, 일반죄수들보다 강력히 제압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불보듯 뻔하다. 다만 그 정도가 도를 지나친다는 것에 대한 고발을 이 영화는 하고 있다.(이 영화의 제작년도와 배경을 생각하면 그 당시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나  제도도 고려를 해야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누가봐도 선vs악이 아니라 악vs악이다. 이러한 것들을 좀 더 균형있게 다루었으면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감동적인 코드를 가지고 있다. 대사들은 하나하나 주옥같으며 종신형의 죄수들의 마음상태나 삶 그리고 여러가지 딜레마들도 잘 표현되었다. 다만 종신형을 받은 죄수가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은 이상 그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댓가를 치르는 것인데 그들의 이러한 아픔에 대한 연민과 동정에 의한 감동을 받아야하나? 라는 질문이 머리 속에 맴돌아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고 감동은 물론 없었다. 용서와 면책은 같은 말이 아니지 않는가. 비극은 영화 속의 일반적 시선에서 벗어나 인물들에게 순수한 동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극 중에서의 의도적이고 편향적인 연출은 이러한 감정 이입을 오히려 방해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들에 의한 피해자의 고통과 그 주변의 아픔에 대한 속죄로는 턱없이 모자라지 않을까.


특히 브룩스의 자살이 그가 과거에 저지른 죄에 대한 죄책감과 그에 대한 고민, 속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대부분의 인생과 그것을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변하지 않은 자신과 변해버린 세상의 괴리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에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럼 브룩스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목숨과 아픔은 무엇이 되는가.


그럼에도 이 영화를 아주 재밌게 본 이유는 영화가 그려낸 인물들을 그들이 종신형 죄수라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재밌게 잘 그려내었고 전체적인 사건들의 흐름이 개연성있으며 재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앤디 듀프레인과 레드를 중심으로 하는 인물들의 유쾌함이나 통쾌함은 속이 후련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트루먼 쇼 처럼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고 진지한 고민과 생각을 던져주는 메시지가 있는 영화는 아니였지만 몰입해서 아주 재밌게 본 영화임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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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이긴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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