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1980), 칼 세이건
7판, 8판. 우리가 대학에서 주로 보는 전공책들은 뭐가 그리 중요한지 늘 개정과 수정을 거듭해 새로운 버젼의 책들을 찍어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은 늘 개정에 개정을 거듭해 교육과정을 개편해낸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학문이라는 것은 늘 고쳐지고 정확해지려 애씀과 동시에 새로운 것들을 추가해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가려한다. 고등학교 화학과 물리에는 이제 양자역학이 들어오게 되었고 그것들은 몇 십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학문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코스모스 라는 책이 매우 유명하고 가치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출판년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책은 '코스모스' 즉, 우주를 지배하는 단 하나의 질서에 대해 소개한다. 아주 작은 지구의 미생물의 세포 핵에서 부터 우리가 알지도 보지도 못했던 저 멀리의 별이나 블랙홀까지 아주 재밌게 설명한다.
칼 세이건이 유명한 천문학자기에 당연히 천문학 학사 졸업자 이겠거니 했는데 놀랍게도 인문학 학사 졸업자였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문장들이 매우 아름답고 읽기 쉽다. 이러한 점이 코스모스의 대중적 소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또한 여러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 참가한 그의 이력이 더해져 화성과 금성의 탐사 그리고 보이저 1,2호의 내용은 정말 재밋게 잘 읽었다.
이 책은 교양과학서 이면서 과학사상서 라고 할 만큼 칼 세이건 본인의 우주에 대한 철학이 책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과학은 본디 사물의 성질을 이성적으로 관찰해 그 무엇도 다르게 보지 않고 질서와 법칙을 수립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그는 자신의 감정과 판단으로 물질마다 서로 다른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지구는 다른 어느 별보다 소중하며 우리가 지켜야 한다.' 혹은 외계인의 존재나 거기서의 우리의 존재 의미같은 주제에 대해서 논할 때는 '이것이 정말로 교양과학서인가' 라는 생각도 들만큼 칼 세이건 본인의 개인적 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다.내가 이 책을 집어들은 이유를 생각해볼 때 이 점은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아쉽게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과학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들이 어려운 수식이나 용어, 방정식 하나 없이 접하기 쉽게 설명이 되어있다. 누구나 흥미를 가질 만하게 쓰여져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칼 세이건의 재담능력이 빛을 발한다. 그 당시 출간된 이 책을 읽고 자신의 꿈을 찾은 이들에겐 얼마나 좋은 책이 되었겠는가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뉴턴, 케플러 등등의 뛰어난 과학자의 시작도 자연과학에 대한 대중적인 책들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이 책의 번역자인 홍승수 교수님은 책 곳곳에 학계에 추가된 내용과 수정이 필요한 내용에 주를 달아 설명하였는데 정말 좋았다. 이 책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온갖 분야의 학문이 섞인 이러한 책을 번역하는 데에 있어서 본인의 폭넓은 지식과 주변의 도움을 포함한 번역자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싶다.
누구에게나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방아쇠가 될만한 좋은 책인 것 같다. 내가 1980년대에 살았었다면(나는 그때 태어나지도 못한 꼬맹이다.) 충격과 놀라움을 안고 주변에 추천에 추천을 거듭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누군가가 '과학에 대해 알고 싶어'라고 한다면 존 그리빈의 '과학(2002)'을 소개할 것이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은 왜일까. (심지어 천문학에 한해서 떼어놓는다 해도 말이다.)
p.s) 인터넷에서 본 한 글이 생각이 났다. (무단불펌으로 문제시 내리겠습니다. 출처도 찾기 힘들어서...)
예전에는 가벼운 자리에서 사람들이 양자역학(비록 제가 아는 수준은 수소원자 하나에 대한 설명에서 마무리되는 학부 레벨의 그것이지만)이나 특수상대성이론(저는 일반상대성이론은 모릅니다, 텐서 책 붙잡고 조금 공부하다만 게 전부라서)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면 이런 저런 비유를 들어가며 신나게 말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설명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재미를 붙여서 과학교양서들을 이후로 계속 섭렵하더니 나중에 스스로 대통일장이론을 완성(?)해 나가는 엄청난(?) 천재성을 발휘하더군요.
그 때 느꼈습니다. 수학을 통하지 않고 비유의 개념으로 물리학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말이 되지 않고 위험한 일인지를...
이런식으로 어설프게 용어만 남발하는 사람들이 만약 사선생이라면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준 격으로 "Catch me if you can"이나 "월가의 늑대"의 주인공(말하고 보니 둘 다 디카프리오^^)에 뒤지지 않는 엄청난 인물이 되겠더군요.
프랑스의 한 유명 노수학자가 자신의 업적을 쉽게 설명해 달라는 국내 유명일간지 기자의 요청에 대해서 쉽게 설명할 방법은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 그 경지에 올라서 직접 이해하는 것 이 외에는 길이 없다고 한 인터뷰 기사가 떠오릅니다.
그 기사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그런 수학자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쉬운 설명을 여러 번 요청했다가 번번히 거절당하더군요. 이런 게 한국식 사고방식의 일례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회사 생활을 할 때도 사안을 그대로 깊이 있게 설명하면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이해할 의지가 있는 지도 의심스러운) 상관들이 꽤 있더군요. 그런 불들은 부하들에게 쉬운 설명을 요구하고 그 쉬운 설명이란 게 결국은 비유를 통한 어설픈 이해인 경우가 다반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부하 직원에게 "별 것도 아닌 것을 괜히 어렵게 설명해?"하면서 핀잔으 준 다음에 비유를 통해 억지로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말도 안되는 해결책을 고안해서 지시를 내립니다. "언제까지 내가 이런 문제들을 일일히 풀어 주어야 하나..."하는 첨언과 더불어서.
이런식으로 도출된 해결책이 현장에서 동작하지 않으리란 것은 너무도 자명합니다.
비유를 통한 쉬운 이해가 해당 학문을 제대로 공부할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위한 보조수단으로서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정 제대로 이해를 하려면 정공법 외에는 길이 없다고 생각핮니다. 회사의 현장도 마찬가지구요. 관리자가 현장을 뒹굴면서 몸으로 체험하고 이해하지 않은 사안들에 대해서 어설픈 이해와 대응으로 문제를 그르치는 사례들을 꽤 많이 보아왔습니다.
요즘들어 "쉬운수학", "쉬운 과학"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있는데요. 그럴 때 마다 저는 기하학을 쉽게 가르쳐 달라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요청에 대해서 "There is no royal road in geometry"라고 말했던 유클리드를 모욕하고 놀리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제가 과하게 반응하는 것인지는 모르겟지만...
이런 일련의 움직임이 수학교육을 전공한 사람들이 정통 수학자들에게, 물리교육을 전공한 사람들이 정통 물리학자들에게 침범 당하지 않을 자신들만의 영역, 자신들만의 존재의미를 구축하고자 하는 시도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구요. 저는 (제 지적 능력이 모자라서일 수도 있지만) 수학이나 과학이 어려운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요. 물론 "쉬운 수학", "쉬운 과학"에 대해서 제가 충분히 모르면서 선입관에서 속단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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